식량원조 역사 및 수혜 인원규모 소개
광복 직후, 남한 주민의 식량소비 급증, 해외동포 의 귀환 및 북한 주민의 월남
등으로 식량 수요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비료, 농약, 농기구 등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농산물 생산은 오히려 위축되어 곡물 가격이
폭등하였습니다.
이후 6,25전쟁 발발과 보릿고개가 연례적으로 반복됨에 따라
국민들이 배고픔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진> 한국 정부가 플라너리 UNKUP 대표와 루카스 UNDP 주한대표에게 WFP 수해 이재민에 대한 식량 구호 지원을 간청하는 서신
1963년 대한민국 정부(농림부/외교부)가 WFP에 식량지원을 요청했고,
WFP는 그 지원에 응답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WFP의 식량원조는 우리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지원이었습니다.
1964년부터 1984년까지, WFP는 20여년 동안 식량, 영양 지원부터 치수1, 취로2, 사방3 사업까지
총 23개의 국가 사업에 1억4백만불(현재 한화 기준 약 1,195억)을 지원했습니다.
이 중 식량 관련 지원은 85백만불에 달했습니다. 대한민국이 1984년에 기아 종식(Zero Hunger)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사회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한국의 1960년에서 70년대 보릿고개 시절,
당시 희귀했던 밀가루를 WFP에서 지원해 주어서
굉장히 도움을 받았습니다
1970년대에서 80년대 한국에서 어린이집과
직업훈련소에서 진행한 식량 및 영양지원사업이
WFP의 지원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 대한민국 식량원조 개발사업 (1964-1984)
유엔 대한민국 원조 규모 (1945-1999)